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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시 '타는 목마름으로' 속 억압의 시대, 민주주의 갈망, 반복과 절창 분석

by sunnymoney1 2025. 6.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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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시 타는 목마름으로 관련 이미지

김지하의 대표작 「타는 목마름으로」는 1970년대 유신 독재 정권의 억압 아래에서 민주주의를 외칠 수 없던 현실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를 향한 뜨거운 갈망과 저항 의식을 담아낸 저항시이다. 시인은 억압받는 현실 속에서도 자유를 향한 희망의 불씨를 지우지 않는다. 이 작품은 시대를 대표하는 상징시이자, 한국 현대시의 중요한 전환점으로 평가받는다.

억압의 시대

김지하의 시 「타는 목마름으로」는 시작부터 독자의 감정을 휘감는다. 신새벽 뒷골목에 / 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라는 구절은 단순한 상황의 묘사 이상이다. 신새벽은 희망의 시간, 새로운 시작의 상징이며, 뒷골목은 감시와 통제의 눈을 피해 숨어야 하는 현실의 그림자다. 시인은 밝은 아침을 기다리는 시간에 가장 그늘지고 음침한 곳에 민주주의의 이름을 몰래 쓴다. 그 단어 하나조차 마음 놓고 발화할 수 없던 시대 상황이 그대로 드러나는 시점이다. 화자는 민주주의를 너라고 부른다. 이는 민주주의를 단지 개념이 아닌 인격체, 혹은 그리움의 대상으로 형상화한 의인화이다.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 / 내 발길은 너를 잊은 지 너무도 너무도 오래라는 반복과 과장된 표현은 억압의 시대 속에서 민주주의를 강제로 잊고 살아야 했던 현실을 고백한다. 그러나 오직 한가닥 있어 / 타는 가슴 속 목마름의 기억이라는 구절을 통해 화자는 그 절망적인 현실 속에서도 민주주의를 향한 갈망만은 살아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이 연은 민주주의에 대한 억압된 열망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는 희망을 교차적으로 드러내며 시 전체의 정서를 설정한다. 단순한 그리움이 아닌, 생존의 조건이 되어버린 자유에 대한 사무치는 갈망을 목마름이라는 감각적 비유로 구체화한다. 이는 단순히 원한다는 진술을 넘어, 갈증으로 몸부림치는 생존의 절실함을 드러낸다.

민주주의의 갈망

2연에서는 시적 배경이 아직 동 트지 않은 뒷골목으로 설정되며, 어두운 시대적 배경이 더욱 강화된다. 시인은 그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다양한 소리들을 나열하며 당시의 공포와 불안의 분위기를 조성한다. 발자국 소리, 호루라기 소리, 문 두드리는 소리, 외마디 비명소리, 신음소리, 통곡소리, 탄식소리는 단지 소리의 중첩이 아니다. 이는 당시 체포, 고문, 감금과 같은 물리적 폭력이 일상화된 사회에서 사람들이 실제로 겪었던 공포의 감각이다. 이 소리들은 단지 배경음이 아니라, 화자의 가슴팍 속에 깊이 새겨진다. 이는 화자가 시대의 고통을 남의 일처럼 외면하지 않고, 자기 존재의 일부로 수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네 이름 위에 / 네 이름의 외로운 눈부심 위에라는 표현은 민주주의가 외면받고 고립된 현실 속에서도, 여전히 강렬한 이상으로 존재하고 있음을 말한다. 되살아오는 끌려가던 벗들의 피묻은 얼굴은 단순한 묘사가 아닌 시대의 피와 땀으로 얼룩진 민주주의 운동의 기억이다. 이것은 구체적이고 생생한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독자에게 실제적 고통을 환기시킨다. 이 시점에서 시인은 단지 민주주의여라고 쓰는 행위 자체가 저항의 상징이자 역사의 기록이 된다고 인식한다. 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 / 떨리는 치떨리는 노여움으로 라는 표현은 반복과 점층을 통해 분노가 감정을 넘어 육체의 떨림으로 발현되고 있음을 나타낸다. 그리고 그 분노의 손은 나무판자에, 서툰 솜씨로, 백묵으로 민주주의라는 단어를 쓴다. 이는 상징적 행위이자 선언이다. 종이에 쓰는 것이 아닌, 판자에 백묵으로 새기는 이 행위는 곧 목숨을 건 기록이며, 침묵을 깨는 말의 탄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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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목과 절창의 형식

마지막 3연에서는 절정에 이른 감정이 함축적으로 표현된다. 숨죽여 흐느끼며는 눈물을 감추고 오열하는 장면이다. 화자는 소리 없이 통곡하며 절망과 분노, 슬픔이 겹쳐진 복합 감정을 안고 있다. 그러나 그 절망의 끝자락에서 그가 선택한 행동은 민주주의의 이름을 다시 쓰는 것이다. 타는 목마름으로 / 타는 목마름으로 / 민주주의여 만세는 반복과 절창(絶唱)의 형식으로 이루어진 구절이다. 이 반복은 언어의 무게를 더하며, 문장의 리듬은 시의 절정을 이룬다. 그 말이 단지 공허한 선언이 아니라, 생명을 건 외침이자 시대의 상처를 꿰매는 의지의 표현임을 명확히 드러낸다. 민주주의여 만세는 단순한 구호가 아니다. 이 말은 당시 한국 사회에서 실제로 탄압받던 말이었다. 민주주의를 부르는 것만으로도 체포당하고 고문당하던 시절, 이 말은 말이 아니라 저항 그 자체였다. 시인은 침묵을 강요받던 시대에 말로서, 시로서 민주주의를 말하고 있다. 이 시가 시인 개인의 고백을 넘어, 시대의 울분을 대변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김지하는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넘어, 말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말하려는 의지 자체를 시로 표현함으로써 문학의 사회적 기능을 극대화했다. 민주주의여 만세는 그래서 단지 정치 구호가 아닌, 존재 선언이며 생존의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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