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병란 시인의 「전라도 젓갈」은 전라도 지역 고유의 음식인 젓갈을 소재로 삶의 애환과 지역의 정서를 감각적으로 표현한 서정시입니다. 이 시는 단순한 음식에 대한 예찬을 넘어, 젓갈이라는 발효 음식을 통해 인간의 삶 속 고난, 기다림, 인내, 그리고 사랑과 같은 감정의 농밀한 층위를 상징적으로 드러냅니다. 시인은 '썩고 썩어도 맛이 생기는 것'이라는 역설적 문장을 통해 젓갈의 숙성과정을 인생에 비유하며, 지역성과 민족적 정서를 함께 품은 언어로 독자에게 깊은 울림을 줍니다. 본문에서는 이 시가 가지는 시적 구조와 반복 표현, 토속어의 활용, 감각적 이미지 구성 등을 중심으로 작품을 다각도로 해석하고, 전라도 젓갈이 상징하는 삶의 맛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살펴봅니다. 문학을 통해 지역적 정체성과 인간의 본질적 감정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알고자 하는 독자에게 풍부한 정보와 해석의 기반을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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젓갈의 시적 상징
「전라도 젓갈」은 발효 음식을 하나의 예술적 상징으로 끌어올려, 이를 통해 인간 삶의 다양한 감정과 관계의 본질을 전달하는 작품입니다. 시의 첫 연에서 '썩고 썩어도 썩지 않는 것', '썩고 썩어도 맛이 생기는 것'이라는 표현은 발효라는 물리적 현상을 삶의 통과의례로 형상화합니다. 이는 표면적으로는 부패의 이미지이지만, 오히려 그 과정을 거쳐 더욱 깊은 맛을 내는 젓갈처럼, 인간도 고통과 기다림을 통해 성숙해진다는 철학적 메시지를 내포합니다. 전라도 젓갈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시간과 노동, 정성과 기억이 응축된 하나의 삶의 상징으로 읽힙니다. 시인이 강조하는 전라도 갯땅의 깊은 맛은 단지 지리적 위치가 아닌, 그곳 사람들의 삶의 방식, 인내와 끈기의 정서를 말합니다. 갯땅에서 캐어낸 조개나 새우가 곰삭을 때까지 기다려야 제맛이 나듯, 인간의 삶도 쉽게 평가할 수 없는 내면의 농도를 지닌다는 것을 이 시는 역설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이 시의 구성적 특징 중 하나는 반복 구조를 통한 리듬감 형성입니다. 썩고 썩어도, 절이고 절이어, 짠맛 쓴맛 매운맛과 같은 반복어는 단어의 누적을 통해 감정의 밀도를 높이고, 리듬을 통해 독자에게 시각과 청각을 동시에 자극하는 효과를 줍니다. 이러한 언어의 반복은 전라도 사투리 및 토속어와 결합해 지역의 정서를 진하게 풍기며, 젓갈이라는 소재가 단순한 음식이 아닌, 지역적 문화와 정서를 전하는 매개체로 자리 잡게 합니다. 시인은 또한 젓갈의 풍미를 눈물의 맛, 한숨의 맛, 진한 맛 등 감각적으로 표현하면서, 그 속에 녹아 있는 세대의 삶과 고단함을 드러냅니다. 특히 어머니 눈물 같은 진한 맛이다 / 할머니 한숨 같은 깊은 맛이다라는 구절은 단순히 식재료의 풍미를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한 가정과 공동체의 감정적 자산을 시적으로 압축한 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젓갈은 생존의 음식이자 기억의 매개로 기능하며, 어머니와 할머니의 삶, 곧 여성이 감내해 온 역사와 경험을 대표합니다. 이처럼 「전라도 젓갈」은 젓갈이라는 소재를 통해 발효와 시간, 노동과 사랑, 그리고 삶의 질감을 감각적으로 전달하는 동시에, 음식이 지니는 정체성과 정서를 문학적으로 승화시킨 뛰어난 시적 작업이라 할 수 있습니다.
향토성과 표현 기법
문병란의 시는 향토적인 어휘와 지역 정서를 적극적으로 활용함으로써 독자에게 전라도 지역만의 고유한 언어 감각과 분위기를 전달합니다. 특히 「전라도 젓갈」은 시의 중심 소재인 젓갈을 통해 지역의 생활 문화, 어휘, 풍경을 풍부하게 녹여냅니다. 예컨대 '장광에 햇살은 쏟아져 내리고', '미닥질 소금밭에 소금발은 서는데'와 같은 구절은 전라도 농가의 장독대 풍경을 생생하게 묘사합니다. 이때 사용된 단어들 장광, 미닥질, 소금발 등은 일반 독자에게 낯설 수 있지만, 그 낯섦이 오히려 독자로 하여금 시 속 공간으로 더 깊숙이 들어가게 만드는 역할을 합니다. 지역 방언이 지닌 정서적 울림은 표준어로는 구현할 수 없는 감각적 분위기를 만들어내며, 시의 향토적 색채를 더욱 짙게 합니다. 이러한 어휘 선택은 시인의 의도된 전략이자, 독자와 감정적 유대를 맺는 효과적인 방식입니다. 또한 시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시적 구조는 문장의 리듬감을 형성하고, 시 전체에 일관된 정서적 톤을 부여합니다. 짠맛 쓴맛 매운맛의 삼행 구조는 독자에게 삶의 복합적인 감정 구조를 직관적으로 전달하며, 다양한 감각이 얽힌 젓갈의 맛을 느끼게 합니다. 특히 설움도 달디달게 익어가는 맛이라는 구절은 삶의 고통마저도 시간이 지나며 정서적 숙성으로 변한다는 점을 함축하며, 발효 음식과 인간 정서의 평행 구조를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입니다. 시인은 단순히 지역 음식을 예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젓갈의 맛을 통해 삶의 총체적 맥락을 되짚습니다. 눈물은 말라서 소금기 저린 뻘밭이 됐나 / 한숨은 쉬어서 육자배기 뽑아 올린 삐비꽃이 됐나와 같은 구절은 자연 속에 스며든 인간 감정을 추상적이면서도 시각적으로 형상화합니다. 삐비는 삘기의 방언으로, 고된 노동 끝에 피어나는 생명과도 같으며, 육자배기는 전라도의 판소리에서 유래된 전통 가락으로 슬픔의 승화를 상징합니다. 이러한 표현 방식은 시인이 단어를 단순한 의미 전달 수단으로 사용하지 않고, 감정의 질감과 문화의 깊이를 언어를 통해 직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습니다. 시 전체는 일종의 감각적 풍경화처럼 구성되어 있으며, 독자는 이를 통해 전라도라는 지역의 냄새와 분위기를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시의 리듬과 어휘 선택은 문학적 아름다움뿐 아니라, 지역 정체성과 문화적 가치를 되새기게 하는 교육적 효과도 갖추고 있습니다.
음식과 인생의 교차점
시의 후반부는 젓갈을 인생의 은유로 확대해, 단순한 음식의 이야기를 넘어 인간의 존재와 정체성, 감정의 본질에까지 도달합니다. 썩고 썩어서 남은 맛, 닳고 닳아서 타고 타서 남은 고춧가루라는 표현은 발효를 넘어선 숙성의 시간, 즉 반복된 고난과 인내의 흔적을 언어화한 것입니다. 이는 단지 음식의 숙성 과정이 아니라, 인간의 삶이 겪는 반복된 시련과 그것을 통한 성장을 의미합니다. 오장에 아리하는 삶의 매운맛이다라는 구절은 신체적 반응을 통해 정서를 표현한 시어로, 가슴속까지 저미는 감정을 상징합니다. 이때의 매운맛은 단지 혀끝의 자극이 아닌, 기억과 정서가 뒤섞인 감정의 복합적 반응으로 해석됩니다. 이어지는 복사꽃 물든 누님의 손끝에 스미는 눈물은 정서를 시각적 이미지로 전달하는 뛰어난 구절로, 사랑과 그리움, 가족애를 함축합니다. 특히 오호 전라도 여인의 애간장 다 녹은 / 아랫목 고이고이 감춰 놓은 사랑 맛이다는 이 시의 정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감탄사 오호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깊은 감정의 출구 역할을 하며, 그 뒤에 오는 구절은 단순히 음식의 풍미를 넘어서 사랑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감각적으로 형상화합니다. 아랫목은 한국적인 정서의 상징 공간이며, 고이고이 감춰 놓은이라는 표현은 소중한 감정이나 기억을 오래도록 지켜온 삶의 방식과 연결됩니다. 결국, 문병란 시인이 말하는 젓갈은 단순한 저장 식품이 아니라, 세월의 결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문화적 아이콘입니다. 이 젓갈 속에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정성과, 고단한 일상을 견디는 힘이, 그리고 지역 문화가 응축되어 있습니다. 시는 음식과 인생이 서로 맞물리는 교차점에서 독자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 삶의 진짜 맛은 어디서 오는가? 그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화려함이 아니라, 시간이 만들어 낸 깊은 흔적 속에서 시작된다는 점을 이 시는 끝까지 일관되게 보여줍니다. 이를 통해 시는 문학적 상징과 향토적 정서, 감각적 이미지의 결합이 어떻게 독자에게 의미 있는 통찰로 전이될 수 있는지를 증명하며, 음식이 단지 배를 채우는 수단이 아닌 삶을 돌아보게 하는 문학적 통로가 될 수 있음을 알려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