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은 시인의 작품 「귀로 쓴 시」는 청각 중심의 감각을 통해 감정과 풍경을 섬세하게 표현한 현대 시조로, 감각의 재구성과 언어 실험이 두드러지는 작품입니다. 기존 시조 형식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자음만으로 청각 이미지를 형상화하는 방식은 독자에게 참신한 시적 체험을 제공합니다. 이 시는 자연의 풍경을 눈으로 보지 않고 귀로 듣는 감각의 확장을 보여주며, 자음을 통해 미세한 감정의 결까지 표현하고 있습니다. 특히 ㅉㅉㅉ, ㅅㅅㅅ와 같은 기호화된 자음들은 햇살과 바람의 움직임을 귀로 느끼게 하며, 후두엽 외진 간이역과 같은 상징적 시어는 외로운 내면의 풍경을 공간적으로 드러냅니다.
청각 이미지의 시적 확장
이승은 시인의 「귀로 쓴 시」는 청각적 경험을 언어로 형상화한 매우 독창적인 현대 시조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접하는 시조는 자연 풍경을 시각적으로 묘사하거나, 감정을 직설적 언어로 전달하는 방식이 많았다. 그러나 이 작품은 그 틀을 벗어나, 청각 중심의 감각적 이미지로 시를 구성하며 새로운 표현 방식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특히 자음 반복 표현인 ㅉㅉㅉ과 ㅅㅅㅅ은 독자가 소리를 직접 듣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큼 생생한 청각적 이미지로 기능한다. ㅉㅉㅉ은 햇살이 피부에 스며드는 듯한, 또는 건조한 공기를 가르며 쪼개지는 듯한 느낌을 귀로 전하는 표현이다. 이는 우리가 평소 시각으로 인식하던 햇살을 청각으로 전환하는 시인의 감각적 전회(轉回)를 보여준다. 단순한 기호처럼 보일 수 있는 이 자음의 반복은, 감정적으로는 미세한 떨림과 외로움, 혹은 조용한 아침의 고요함을 더욱 깊이 있게 전달하는 도구로 사용된다. ㅅㅅㅅ 역시 마찬가지다. 이는 바람이 문틈을 타고 흐를 때 나는 거의 들리지 않는 소리, 혹은 곁을 스쳐 지나가는 순간의 가벼운 진동처럼 인식된다. 이런 소리는 실제로는 언어로 표현되기 어려운 감각인데, 시인은 자음을 통해 이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면서도 독자의 청각을 자극하는 방식으로 전달한다. 그 결과, 독자는 눈으로 시를 읽으면서도 귀로 풍경을 느끼는 독특한 시적 체험을 하게 된다. 이러한 청각적 이미지의 활용은 시의 전체 구조와 리듬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승은 시조의 구성은 전통적인 3장 6구 형식을 기반으로 하지만, 각 장의 전개는 감각의 깊이에 따라 점층적으로 구성된다. 초장에서는 햇살의 소리 ㅉㅉㅉ를 들으며 시작되고, 중장에서는 ㅅㅅㅅ 바람이 감각을 세밀하게 자극하며 이어지며, 종장에 이르러서는 녹슨 기차 바퀴 소리라는 상징적 이미지로 정서가 절정에 달한다. 이러한 청각 중심의 묘사는 단순한 청각의 재현을 넘어서 내면의 정서를 감각화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시인은 감정을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대신, 귀로 들리는 자연의 소리와 그 안에 스며든 감정을 교차시킴으로써 독자에게 시의 깊이를 더욱 풍부하게 전달한다. 이처럼 「귀로 쓴 시」는 청각의 예민함과 감성적 울림을 동시에 담아낸 감각 중심 시조로서, 현대 시조가 나아갈 수 있는 새로운 표현 영역을 제시하는 작품이다.
상징적 시어의 구조
이승은 시의 또 다른 특장점은 상징적인 시어의 선택과 그것을 통한 구조적 구성 방식이다. 특히 종장에 등장하는 표현인 후두엽 외진 간이역과 녹슨 기차 바퀴 소리는 단순히 시적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화자의 내면 상태를 공간화하고 시간화하는 기능을 동시에 수행한다. 후두엽은 뇌의 시각 중추가 위치한 영역이다. 이 시에서는 시각을 관장하는 영역임에도 불구하고, 외진 간이역이라는 수식어가 붙음으로써 아이러니가 형성된다. 즉, 시각을 담당하는 뇌 부위조차 외진 공간, 곧 누구에게도 발견되지 않는 고립된 장소로 묘사되는 것이다. 이 표현은 단순한 뇌의 부위를 넘어서, 화자의 내면 깊은 곳에 자리 잡은 고립된 감정과 정서의 공간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생리학적 용어를 시어로 사용하는 것은 흔치 않으며, 이 시의 실험적 언어 사용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지점이다. 이어지는 녹슨 기차 바퀴 소리는 시간의 흐름과 정지된 감정을 동시에 상징한다. 기차는 이동을 상징하지만, 그 바퀴가 녹슬어 있다는 점에서 오랜 시간 기다림의 정체 상태가 강조된다. 마치 움직이지 않는 시간 속에서 홀로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화자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이때의 기차 바퀴 소리는 실제 철도 소리가 아닌, 내면에서 반복되는 기억의 진동, 고독감의 울림, 고요함 속의 움직임 없는 소리로 해석될 수 있다. 이러한 상징적 시어들은 시의 구조를 보다 입체적으로 만들어준다. 감정이 점진적으로 고조되면서도 외부로 터져 나오지 않고, 시 속에서만 유영하듯 맴도는 리듬을 형성한다. 시인이 선택한 단어는 감정을 정리하는 도구이자, 독자에게 전달되는 감정의 경로를 조절하는 장치로 작용한다. 단어 하나하나가 감정을 함축하고 있으며, 그것이 어떤 감각을 통과해 전해지는지를 체계적으로 설계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상징어들은 이 시가 단순한 감정 표현의 시를 넘어, 감정을 하나의 풍경으로 구조화해내는 예술적 장치임을 보여준다. 「귀로 쓴 시」는 시어 하나하나에 감정과 감각, 공간과 시간의 요소를 결합시켜, 독자가 언어 이상의 의미를 감지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이런 점에서 이 작품은 현대 시조에서 실험성과 시적 정교함을 모두 만족시키는 귀중한 예로 평가될 수 있다.
감정의 리듬과 정서
이승은의 「귀로 쓴 시」에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청각적 이미지나 상징어의 실험성만이 아니다. 이 시는 그 모든 기법을 통해 화자의 내면에 깊이 잠재된 감정의 흐름과 리듬을 세밀하게 전달하고 있다. 햇살 속 ㅉㅉㅉ에서 시작되어 녹슨 기차 바퀴 소리로 끝나는 감정선은 고요함에서 출발하여 서서히 정적 속의 쓸쓸함으로 이행하는 과정이다. 초반에 등장하는 ㅉㅉㅉ은 고요 속에서도 미세한 감각이 살아 있음을 보여준다. 햇살이 들이치는 조용한 공간에서 들리는 소리는 단순한 배경음이 아니라, 감정을 일깨우는 단서로 작용한다. 이는 외부 세계와 단절된 화자가 여전히 감각적으로 살아 있다는 증거이며, 그 감각은 외로운 현실에서 유일하게 소통 가능한 수단으로 묘사된다. 중간에 등장하는 ㅅㅅㅅ는 그 흐름을 이어가며 감정을 더욱 섬세하게 조율한다. 이는 바람이라는 요소를 통해 지나가는 시간, 흐름, 그리고 점점 멀어지는 관계의 감정을 나타내며, 화자의 내면이 점차 혼자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을 상징한다. 이 부분은 이 시에서 가장 서정적인 감정이 응축되어 있는 지점이며, 감정이 터지기 직전의 정적 속 긴장감을 시각화하고 있다. 마지막 구절인 녹슨 기차 바퀴 소리는 정서의 최종 종착점이다. 이는 움직임이 느껴지는 동시에, 정체와 부식을 상징하는 이중적 의미를 지닌다. 이 소리는 떠나는 누군가가 남긴 잔향일 수도 있고, 화자가 머물러 있는 자신만의 감정의 공간에서 반복되는 기억일 수도 있다. 결국, 화자는 끝내 어떤 대상이나 감정을 붙잡지 못한 채, 고요하고 낡은 감정만을 품은 채 남겨진다. 이러한 감정의 흐름은 시 전체의 리듬과도 밀접하게 연결된다. 각 장은 감정이 고조되는 단계를 세밀하게 구분하며, 초장-중장-종장의 구조 안에서 완결성을 지닌다. 리듬은 느리게 진행되며, 감정의 깊이에 따라 고저를 조절하고, 독자에게는 고요하지만 묵직한 정서적 울림을 남긴다. 결론적으로 이 시는 내면의 감정을 리듬감 있게 구성해, 독자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감정선에 몰입할 수 있도록 만든다. 이승은의 「귀로 쓴 시」는 감정의 흐름을 자연스러운 리듬으로 풀어내며, 감각적 언어와 서정적 정서를 완벽하게 결합한 시적 성취를 보여주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