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호 시인의 「북어」는 죽어서 진열대에 매달린 북어를 통해, 말하지 못하고 생각하지 못하며 비판조차 외면한 채 살아가는 무기력한 현대인을 통렬하게 풍자하는 작품입니다. 이 시는 비판하고자 했던 타인이 곧 자신이라는 깨달음을 통해, 자기반성과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사유로 나아갑니다. 단순한 시적 이미지 너머에 존재하는 사회적 메시지와 시대의 초상을 해설하며, 북어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진실을 풀어봅니다.
무기력한 현대인
최승호 시의 「북어」는 매우 평범한 일상의 오브제, 곧 식료품 가게에 매달린 북어를 시적 화두로 삼고 시작합니다. 하지만 이 북어는 단지 건어물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북어는 생명을 잃고, 말라붙고, 꼬챙이에 꿰어진 채 진열대에 일렬로 늘어서 있습니다. 화자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일상의 피로, 생의 무게를 잃은 채 반복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형상을 떠올립니다. 하루 더 손때 묻고 / 터무니없이 하루 더 기다리는 이라는 구절에서 북어는 생명이 완전히 사라진 존재임에도 여전히 무의미하게 시간 속에 남아 있습니다. 이 모습은 곧 살아 있으나 무기력하게 매일을 반복하며 자신만의 의지를 잃은 현대인의 상징으로 읽힐 수 있습니다. 삶을 살아가되 목적 없이, 누군가에 의해 진열되고 조율되는 존재. 이는 곧 주체성을 상실한 채 시스템의 부속품처럼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반영합니다. 특히 "북어들의 일 개 분대가 / 나란히 꼬챙이에 꿰어져 있었다"는 표현은 조직을 연상케 하는 단어 분대를 통해 획일적이고 통제된 집단사회를 암시합니다. 나란히 매달린 북어들은 자유롭지 않으며, 각자의 개성이나 욕망은 사라진 채로 살아갑니다. 이는 현대사회에서 개개인의 삶이 얼마나 동일화되고, 사유 없는 반복 속에 놓여 있는지를 비판하는 강한 상징입니다.
비판의 대상
시의 중심에는 말에 대한 깊은 통찰이 자리합니다. 화자는 북어의 말라비틀어진 모습을 바라보며 "꿰뚫은 대가리를 말한 셈이다"라고 고백합니다. 이어지는 구절 한 쾌의 혀가 자갈처럼 죄다 딱딱했다는 시각적이면서도 촉각적인 이미지로, 말하지 못하는 상태를 생생하게 그려냅니다. 이 말의 불능은 단순히 언어 능력의 상실이 아닙니다. 부조리한 사회에 맞서 말하지 않고, 불의에 침묵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무기력한 현실 인식을 상징합니다. 시인은 더욱 노골적으로 "나는 말의 변비증을 앓는 사람들과 / 벙어리를 말한 셈이다"라고 선언합니다. 말의 변비증은 자기 의견을 내지 못하는 사회적 병리 현상이며, 무덤 속의 벙어리는 말할 기회조차 박탈당한 존재를 의미합니다. 이처럼 화자는 단지 북어를 비판하는 듯 보이지만, 그 북어가 곧 말하지 않는 사람, 침묵하는 사람, 즉 우리 자신임을 비추는 거울로 삼고 있습니다. 이 시의 독특한 점은 단순히 사회를 향한 비판에서 끝나지 않고, 화자 자신에게 그 비판의 화살을 되돌리는 데 있습니다. 시의 전반부는 관찰자의 시선으로 시작되지만, 후반부에서는 북어들이 거봐, 너도 북어지라고 외치며 시적 전환이 발생합니다. 화자는 자신이 비판하던 북어와 다를 바 없는 존재임을 인식하고, 자기반성에 빠집니다. 이는 곧 비판의 주체가 비판의 대상이 되는 역전 구조를 형성하며, 현대시에서 드물게 자기 고백적 구조를 통해 독자에게 직접적인 성찰을 유도하는 방식입니다. 독자는 이 대목에서 비로소 질문하게 됩니다. "나 역시 말을 잃고 살아가는 북어가 아닐까?"라는 자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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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언어
「북어」는 짧은 시편이지만, 구조적 긴장감이 매우 높습니다. 시는 세 부분으로 나뉘는데, 첫째는 북어에 대한 묘사, 둘째는 북어에 대한 연민, 셋째는 화자 자신에 대한 비판입니다. 이러한 3단 구조는 감정의 흐름을 따라가게 하며, 점차 시적 주제를 응축시켜 줍니다. 언어적으로 이 시는 풍자적이며 냉소적인 시어를 사용하면서도, 동시에 감각적 묘사를 통해 시각화와 청각화에 성공하고 있습니다. 자갈처럼 딱딱한 혀, 막대기 같은 생각, 빛나지 않는 등의 표현은 인간 내면의 경직성과 생명력 상실을 실감 나게 표현합니다. 이는 단순히 시적인 장식이 아니라, 시인이 현대인에게 보내는 경고의 언어입니다. 한편, 이 시는 의인화와 상징을 통해 추상적인 주제를 극도로 구체화합니다. 북어는 단순한 사물이 아니라 인간의 은유이며, 그 북어들이 말하는 것처럼 입을 벌리고 부르짖는 장면은 독자에게 충격적인 반전을 선사합니다. 그동안 조용히 매달려 있던; 생명체가 돌연 살아 움직이며 화자에게 질문을 던지는 순간, 우리는 문득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됩니다. 더 나아가 이 시는 참여시의 전통을 현대적으로 계승합니다. 특정한 정치적 함의를 직접 언급하지 않지만, 가슴에 지느러미를 달고도 헤엄쳐 갈 데 없는 사람들 같은 구절은 민주주의의 침묵, 사회적 통제와 억압, 개인의 자유 상실 등의 문제를 암시합니다. 이는 1980년대 이후 한국 사회의 정치 사회적 상황을 은근히 반영하며, 문학이 사회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음을 강하게 보여줍니다. 마지막에 등장하는 북어들의 외침은, 단순한 환청이나 환상이 아니라 현실을 직시하라는 목소리입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도 북어지. 이는 화자 개인의 자기비판에 머물지 않고, 시를 읽는 독자 모두에게 던지는 질문입니다. 당신은 북어가 아닙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