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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영화 '테라비시아로 가는 다리' : 테라비시아라는 세계, 우정과 상실, 감동과 여운

by sunnymoney1 2025. 4.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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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테라비시아로 가는 다리와 관련된 사진

 

‘테라비시아로 가는 다리’는 판타지 영화입니다. 판타지영화이기 때문에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성장기 아이들이 겪는 외로움, 우정, 꿈, 그리고 상실 등의 감정을 화면에 담았다. 이 영화 속에 나오는 테라비시아라는 세계는 어린이들의 내면이 반영된 것이고 현실에 투영된 것이다. 이 영화를 통해 관객은 환상적인 세계라는 것은 결국 자신의 마음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테라비시아라는 세계의 의미

영화 ‘테라비시아로 가는 다리’는 어린이들을 위한 판타지 영화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어린이뿐만 아니라, 남녀노소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영화이다. 이는 모든 연령대가 공감할 수 있는 정서적 깊이를 지닌 작품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상상력’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 주인공인 제스와 레슬리는 현실 속에서 소외되고 외로움을 겪는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상상력을 발휘해 그들의 마음이 투영된 세계를 만들어낸다. 이렇게 그들이 만들어낸 테라비시아는 그들의 소외와 외로움이 치유받고, 서로의 어려움을 이해하게 되는 공간이 된다. 제스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지만, 그가 그린 그림은 현실에서 이해받지 못하고 소외된다. 제스는 외로움을 느낀다. 반면 레슬리는 기존 규칙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사고의 소유자다. 두 아이는 학교라는 그들만의 작은 사회 안에서 현실적인 문제들에 부딪힌다. 현실적인 문제들은 가정의 경제적 어려움, 친구 관계, 권위적인 교육 구조 등이다. 그들은 이런 문제로 외로움을 겪고 여기서 벗어나기 위한 상상의 공간을 생각한다. 이 영화가 아이들의 상상력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이 영화 속에는 현실의 문제를 진지하게 바라보고 있다. 레슬리의 제안으로 숲 속에 만들어진 ‘테라비시아’는 바로 현실의 문제점과 아이들의 상상력이 만들어 낸 것이다. 즉 주인공들의 마음이 투영된 상징적 공간이다. 이곳에서 주인공들은 왕과 여왕이 되고, 거대한 괴물과 싸우며, 마법과 전설이 살아 숨 쉬는 세계를 경험한다. 이러한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세계에서 하는 모험은 그들의 현실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가령,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는 친구를 구해내는 힘은 테라비시아에서의 ‘전투 경험’이 원동력이 되어 나온 것이다. 즉 아이들의 마음이 투영된 상상력이 현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힘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감독 가보체넌 마크는 이 상상 세계와 현실 세계 사이를 경계 없이 넘나들게 연출한 이유이다. 관객이 두 세계를 분리된 것이 아닌 하나의 연속된 흐름으로 받아들이게 만든다. 결국 테라비시아는 현실 속에서 어떤 상처를 받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어떤 상상력을 발휘하는지 보여준다. 

 

우정과 상실, 그리고 진짜 어른이 되는 순간

‘테라비시아로 가는 다리’가 특별한 이유는 어쩌면 ‘어른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가장 아프고도 정확하게 설명해 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제스가 학교라는 작은 사회에서 겪는 괴로움과 상실이 있다. 이를 보는 관객의 마음을 무겁게 하지만, 시련과 고통은 성숙한 인간이 되기 위해, 혹은 진자 어른이 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중요한 포인트는 제스와 레슬리의 우정이다. 영화의 중반부까지는 제스와 레슬리의 우정이 아름답게 펼쳐진다. 둘은 서로가 가지고 있는 결핍을 들여다본다. 그리고 상상을 채워주려고 노력한다. 또한 결핍과 상실을 그들의 마음이 투영된 상상력을 통해 만든 세계에서 경험함으로써 더 끈끈한 우정을 쌓아간다. 제스는 레슬리를 통해 상실된 마음을 채운다. 레슬리는 제스를 통해 상상 속 왕국이 현실에서도 의미를 가진다는 것을 확인한다. 이렇게 제스와 레슬리는 우정을 쌓고 더 깊은 교감을 느낀다. 이 우정은 이 영화의 강력한 힘이다. 하지만 레슬리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우정을 무너뜨리고 제스를 정신적으로 깊은 상실에 빠지게 만든다. 그 장면은 관객에게 충격을 준다. 하지만 이 부분은 의도된 장치이다. 영화가 보여주고자 했던 ‘성장의 고통’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제스는 처음엔 친구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분노하고 부정한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을 통해 성숙해지면서 끝내 죽음을 받아들이게 된다. 상실의 아픔은 누구에게나 있었던 경험이다. 이 부분에서 관객으로 하여금 스스로의 상실 경험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리고 이 상실 슬픔을 겪고 이를 받아들인 후 제스의 변화가 바로 이 영화의 진짜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를 보여준다. 그는 레슬리와 함께했던 테라비시아가 두 사람의 기억이 담긴 곳이며, 동시에 새로운 희망을 이어나갈 수 있는 공간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그래서 그는 여동생을 데리고 그 다리를 다시 건넌다. 테라비시아로 향하는 ‘진짜 다리’를 건너는 순간, 제스는 더 이상 아이가 아니다. 성숙해진 것이다. 그는 더 이상 자신이 느낀 상실의 아픔을 거부하지 않고 인정하면서 성장하고 성숙한 인간이 된다. 이처럼 이 영화는 아이들이 겪는 상실의 경험을 가볍게 여기지 않는다. 오히려 아이들이 세상을 어떻게 느끼고 해석하는지를 진지하게 바라보고, 그 감정을 고스란히 스크린 위에 올린다. 관객이 이 영화를 보고 눈물을 흘리는 이유는, 그들이 아이였을 때 겪었던 순간을 상기하게 되고 우정을 떠올리면서 느끼는 감정이다. 

 

여운과 감동 

영화를 다 보고 나면 마음속에 고요한 감동과 여운이 오래간다. ‘테라비시아로 가는 다리’에 나오는 주인공의 삶을 타인으로 객관적으로 바라본 것이 아니다. 관객은 감정이입 되어 그들의 감정을 같이 경험한 것이다. 그 여운은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는다. 영화를 보고 난 후 관객은 스스로 마음속으로 질문할 수 있다. 나의 삶에는 테라비시아가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이 질문은 너무 동화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어떤 면에서는 현실적인 것으로 볼 수 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영화 속 주인공들처럼 진실한 관계를 맺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 관계를 상실하는 경우가 있다. 그 과정 속에서 상실을 외면하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 그리고 그 안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는 시선은 매우 중요하다. 어른이라고 해서 이러한 상실이 힘들지 않은 것은 아니다. 어른들도 이러한 상실을 겪으면서 한층 성숙해질 수 있다. 테라비시아는 그 모든 것을 상징하는 장소이며, 동시에 우리 각자의 마음속에 존재할 수 있는 공간이다. 또한 이 영화에 나오는 학교라는 사회를 통해서 교육적인 면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창의성의 중요성, 상상력의 힘, 그리고 아이들의 감정과 내면에 대한 존중. 우리는 때때로 아이들이 겪는 감정을 과소평가하거나 ‘유치하다’고 치부하기 쉽지만, 사실 그 감정의 깊이는 성인보다 더 진솔하고, 더 아플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이 영화를 보는 관객은 아이들이 겪는 세계를 유치하다고 무시하지 않고, 아이들이 겪는 세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경험이 매우 중요함을 알게 된다. 그래서 어른이 이 영화를 보면  오히려 더 큰 울림을 준다. ‘테라비시아로 가는 다리’는 슬픔이 새로운 시작을 알려준다. 제스가 여동생을 데리고 다리를 건너는 마지막 장면은, 상실이 새로운 시작임을 보여준다. 사랑은 계속되고, 추억은 다른 형태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누군가를 잃고, 어딘가를 떠나야 하지만, 그 기억과 감정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을 깨닫는 것이 매우 중요하고 이 영화를 보면 그 의미를 알게 되고 거기에서 잊지 못할 깊은 여운이 남는 것이다. 이 여운은 우리의 삶의 방향을 이끌어주는 등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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